회색 도시의 붉은 눈물

회색 도시의 붉은 눈물

0

웅영웅

Poster
Poster

제1화: 회색 도시의 붉은 눈물 새벽 5시, 한빛은 D등급 합성 어묵을 씹으며 오늘도 기계적으로 배달 가방을 메었다. 인공 조미료의 과도하게 짠맛이 혀끝을 자극했지만, 이것이 D등급에게 허용된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산성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이미 익숙해진 냄새였다. 2050년 서울의 아침은 언제나 이랬다. "배달 1542번, 한빛. 오늘의 배정 구역은 구로디지털단지 상위 블록입니다. D등급 배달원 여러분, 등급별 구역 이동 수칙을 준수하여 안전한 배달을 진행해 주십시오." 손목의 D등급 ID 팔찌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구로디지털단지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1-5블록은 D등급과 C등급이 거주하는 하위구역, 6-10블록은 A등급과 B등급의 상위구역이었다. 한빛이 사는 곳은 2블록의 낡은 고시원 밀집 지역이었고, 오늘 배달할 곳은 8블록의 고급 주거 타워들이었다. 팔찌의 회색 LED가 깜빡이며 오늘의 배달 루트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총 47건, 예상 소요 시간 14시간. 휴식 시간 총 1시간 30분. "야, 한빛아! 오늘도 상위블록이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한빛이 돌아봤다. 같은 D등급 배달원인 김대호였다. 40대 중반의 그는 한빛보다 10년 먼저 이 일을 시작했다. "어. 47건이야." "요즘 상위블록 배달이 늘어나는 거 보니 A등급들이 더 게을러지나 봐." 대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세죠." 옆에서 젊은 여자 배달원 박지현이 끼어들었다. "A등급들 눈빛... 정말 벌레 보듯 하더라고요." 한빛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현의 말이 맞았다. 상위블록 배달은 돈은 더 벌 수 있지만, 그만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살아야지 뭐." 대호가 체념적으로 말했다. 그의 거친 손등에는 15년간 배달 핸들을 잡으며 생긴 굳은살이 도드라져 있었다. "형, 이렇게 살다 죽는 건 아니겠죠? 저 위에 사는 사람들처럼... 한 번이라도 당당하게 살아보고 싶어요." 지현이 상위블록을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스물여섯의 그녀에게도 꿈이 있었다. 언젠가는 C등급으로 승급해서 제대로 된 아파트에서 살고, 아이를 낳으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꿈 같은 소리 하지 마. 등급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거야. 내 아버지도 D등급이었고, 내 아들도 D등급이겠지." 대호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한빛이는 어떻게 생각해? 넌 가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한빛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복잡한 심정이었다. 정말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부모가 D등급이면 자식도 D등급, 그게 이 세상 룰이지." 한빛은 아무 말 없이 전동 스쿠터에 올라탔다. 5년째 같은 일상이었다. 그 사이사이 동생 한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한빛은 애써 그 기억을 밀어냈다. 구로디지털단지 경계선에는 촘촘한 검문소가 있었다. 하위블록에서 상위블록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배달 목적 통과입니다. ID 팔찌를 센서에 대주세요." 경비 로봇의 차가운 음성이 울려퍼졌다. 한빛이 D등급 팔찌를 센서에 댔다. 삐삐삐. 불쾌한 경고음과 함께 빨간 불이 켜졌다. "D등급 신분 확인. 상위블록 출입이 임시 허가됩니다. 차등 안내 규정을 송출하겠습니다." 로봇의 목소리가 더욱 차가워졌다. "A등급 전용 시설 이용 금지. 배달 목적 외 30분 초과 체류 시 자동 신고. 엘리베이터 1-3번만 이용 가능, 4번 이상은 B등급 이상 전용. 상업시설 출입 금지. D등급 대기 공간 외 휴식 금지." 한빛의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5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멸감이었다. 상위블록에 들어서자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깨끗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하위블록의 시큼한 산성비 냄새는 온데간데없었다. 푸른 나무들이 도로 양쪽에 늘어서 있었고,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길거리에는 자동 청소 로봇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완벽한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기 중의 미세먼지까지 제거하는 대형 정화 장치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A등급, B등급 사람들은 모두 여유롭고 당당했다. 마치 세상이 자신들의 것인 양 걸었다. 반면 배달원, 청소부 같은 D등급들은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57층 고급 아파트에 도착했다. 한빛은 배달 전용 1번 엘리베이터를 탔다. 낡고 좁았지만, 4번 엘리베이터는 A등급 전용이었다. 투명한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4번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우아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도 D등급 배달원들이 많이 오르내리네요. 정말 비위생적이에요." 4번 엘리베이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빛은 고개를 숙이고 1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57층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40대 남성이 나타났다. 그의 손목에는 금색 A등급 팔찌가 빛나고 있었다. "배달 왔습니다." 한빛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하지만 남성은 한빛을 보지도 않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골프 스코어가 표시되어 있었다. "거기다 놓고 가. 아, 그리고 다음부터는 뒷문으로 와. 정문으로 오니까 우리 아이가 무서워해." 남성이 여전히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야, 손 좀 씻고 만지지 그랬어? D등급이 만진 거 먹기 찝찝하잖아."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한빛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먹이 저절로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순간 한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한별도 이런 시선을 받으며 살았을까?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한빛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빛이 고개를 숙였다. 남성은 코웃음을 치며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빛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5년 전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형... 아파... 너무 아파..." 한별이 침대에서 힘없이 말했다. 19살이었던 한별은 밝고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컴퓨터를 좋아해서 밤늦게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가끔 "형, 이거 봐!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야!"라며 신나게 보여주곤 했다. 그런 한별이 갑작스러운 고열과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죄송합니다. MRI 검사는 C등급 이상, 혈액 정밀 검사는 B등급 이상에서만 가능합니다. D등급 의료 보험으로는 기본 진통제 처방과 간단한 촉진 검사만 가능합니다." 의사의 차가운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았다. 한빛은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D등급의 대출 한도는 고작 300만원이었다. "형... 미안해...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형, 나 요즘 이상한 걸 발견했어. 컴퓨터로 뭔가... 뭔가 중요한 걸 찾은 것 같아... 이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한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눈빛만은 끝까지 또렷했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이. 한별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었다. 그때는 그냥 아픈 아이의 헛소리로만 들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한별은 정말로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배달을 마치고 한빛은 2블록 고시원에 돌아왔다. 3평 남짓한 방 안에는 침대와 작은 책상, 그리고 낡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오늘따라 A등급 남성의 모멸적인 말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한별의 마지막 말도 함께 떠올랐다. "이상한 걸 발견했어. 뭔가 중요한 걸..." 한빛은 작은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한별의 유품들이 놓여 있었다. 오래된 태블릿, 몇 권의 컴퓨터 서적, 그리고 이상한 데이터 칩 하나. 한빛은 그 칩을 5년간 그대로 놔두었다. 한별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는 것 같아서 차마 열어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별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남겨놓은 것일까? 한빛은 떨리는 손으로 데이터 칩을 집어 들었다. 칩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일반적인 데이터 칩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표면에는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회로 패턴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작은 크리스털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빛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한별아... 너는 정말 무슨 일에 휘말렸던 거야? 이건 도대체 뭐지?" 한빛이 중얼거리며 태블릿을 켰다.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살 아이가 어떻게 이런 고급 기술의 칩을 구했을까? 그리고 왜 이것을 자신에게 남겨둔 것일까? 5년 동안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한별의 마지막 선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태블릿에 칩을 꽂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접근 중... 고급 암호화 감지... 생체 인식 스캔 중..." 한빛이 본 적 없는 복잡한 코드들이 화면에 흘러갔다.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밝아지더니... "생체 인식 완료. 한별의 유전적 연관성 확인. 접근 권한 부여." 홀로그램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한 남자의 실루엣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빛의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과연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한별은 정말 어떤 비밀을 남겨놓은 것일까? 데이터 칩의 빛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때 한빛의 귓가에 한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형... 고스트킹을 찾아..." 하지만 그것이 홀로그램에서 나온 소리인지, 기억 속 환청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별이 남긴 이 데이터 칩이 단순한 유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Poster
Poster

승급해서 제대로 된 아파트에서 살고, 아이를 낳으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꿈 같은 소리 하지 마. 등급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거야. 내 아버지도 D등급이었고, 내 아들도 D등급이겠지." 대호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한빛이는 어떻게 생각해? 넌 가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한빛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복잡한 심정이었다. 정말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부모가 D등급이면 자식도 D등급, 그게 이 세상 룰이지." 한빛은 아무 말 없이 전동 스쿠터에 올라탔다. 5년째 같은 일상이었다. 그 사이사이 동생 한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한빛은 애써 그 기억을 밀어냈다. 구로디지털단지 경계선에는 촘촘한 검문소가 있었다. 하위블록에서 상위블록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배달 목적 통과입니다. ID 팔찌를 센서에 대주세요." 경비 로봇의 차가운 음성이 울려퍼졌다. 한빛이 D등급 팔찌를 센서에 댔다. 삐삐삐. 불쾌한 경고음과 함께 빨간 불이 켜졌다. "D등급 신분 확인. 상위블록 출입이 임시 허가됩니다. 차등 안내 규정을 송출하겠습니다." 로봇의 목소리가 더욱 차가워졌다. "A등급 전용 시설 이용 금지. 배달 목적 외 30분 초과 체류 시 자동 신고. 엘리베이터 1-3번만 이용 가능, 4번 이상은 B등급 이상 전용. 상업시설 출입 금지. D등급 대기 공간 외 휴식 금지." 한빛의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5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멸감이었다. 상위블록에 들어서자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깨끗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하위블록의 시큼한 산성비 냄새는 온데간데없었다. 푸른 나무들이 도로 양쪽에 늘어서 있었고,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길거리에는 자동 청소 로봇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완벽한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기 중의 미세먼지까지 제거하는 대형 정화 장치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A등급, B등급 사람들은 모두 여유롭고 당당했다. 마치 세상이 자신들의 것인 양 걸었다. 반면 배달원, 청소부 같은 D등급들은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Poster
Poster
Poster

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57층 고급 아파트에 도착했다. 한빛은 배달 전용 1번 엘리베이터를 탔다. 낡고 좁았지만, 4번 엘리베이터는 A등급 전용이었다. 투명한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4번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우아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도 D등급 배달원들이 많이 오르내리네요. 정말 비위생적이에요." 4번 엘리베이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빛은 고개를 숙이고 1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57층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40대 남성이 나타났다. 그의 손목에는 금색 A등급 팔찌가 빛나고 있었다. "배달 왔습니다." 한빛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하지만 남성은 한빛을 보지도 않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골프 스코어가 표시되어 있었다. "거기다 놓고 가. 아, 그리고 다음부터는 뒷문으로 와. 정문으로 오니까 우리 아이가 무서워해." 남성이 여전히 화면을 보며 말했다. "야, 손 좀 씻고 만지지 그랬어? D등급이 만진 거 먹기 찝찝하잖아."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한빛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먹이 저절로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순간 한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한별도 이런 시선을 받으며 살았을까?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한빛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빛이 고개를 숙였다. 남성은 코웃음을 치며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빛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5년 전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형... 아파... 너무 아파..." 한별이 침대에서 힘없이 말했다. 19살이었던 한별은 밝고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컴퓨터를 좋아해서 밤늦게까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가끔 "형, 이거 봐!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야!"라며 신나게 보여주곤 했다. 그런 한별이 갑작스러운 고열과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죄송합니다. MRI 검사는 C등급 이상, 혈액 정밀 검사는 B등급 이상에서만 가능합니다. D등급 의료 보험으로는 기본 진통제 처방과 간단한 촉진 검사만 가능합니다." 의사의 차가운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돌았다. 한빛은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D등급의 대출 한도는 고작 300만원이었다. "형... 미안해...

Poster
Poster
Poster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형, 나 요즘 이상한 걸 발견했어. 컴퓨터로 뭔가... 뭔가 중요한 걸 찾은 것 같아... 이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 한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눈빛만은 끝까지 또렷했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이. 한별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었다. 그때는 그냥 아픈 아이의 헛소리로만 들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한별은 정말로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배달을 마치고 한빛은 2블록 고시원에 돌아왔다. 3평 남짓한 방 안에는 침대와 작은 책상, 그리고 낡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오늘따라 A등급 남성의 모멸적인 말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한별의 마지막 말도 함께 떠올랐다. "이상한 걸 발견했어. 뭔가 중요한 걸..." 한빛은 작은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한별의 유품들이 놓여 있었다. 오래된 태블릿, 몇 권의 컴퓨터 서적, 그리고 이상한 데이터 칩 하나. 한빛은 그 칩을 5년간 그대로 놔두었다. 한별의 마지막 흔적을 지우는 것 같아서 차마 열어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별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남겨놓은 것일까? 한빛은 떨리는 손으로 데이터 칩을 집어 들었다. 칩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일반적인 데이터 칩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표면에는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회로 패턴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작은 크리스털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빛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것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한별아... 너는 정말 무슨 일에 휘말렸던 거야? 이건 도대체 뭐지?" 한빛이 중얼거리며 태블릿을 켰다.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살 아이가 어떻게 이런 고급 기술의 칩을 구했을까? 그리고 왜 이것을 자신에게 남겨둔 것일까? 5년 동안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한별의 마지막 선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태블릿에 칩을 꽂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Poster
Poster

"접근 중... 고급 암호화 감지... 생체 인식 스캔 중..." 한빛이 본 적 없는 복잡한 코드들이 화면에 흘러갔다.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밝아지더니... "생체 인식 완료. 강한별의 유전적 연관성 확인. 접근 권한 부여." 홀로그램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한 남자의 실루엣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빛의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과연 이 남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한별은 정말 어떤 비밀을 남겨놓은 것일까? 데이터 칩의 빛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때 한빛의 귓가에 한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형... 고스트킹을 찾아..." 하지만 그것이 홀로그램에서 나온 소리인지, 기억 속 환청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별이 남긴 이 데이터 칩이 단순한 유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Poster
Poster
P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