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떄 들을걸

그떄 들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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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수민이 얘기했었냐? 내 동생. 지금 간호사야. 고향에서 종합병원 입원병동 근무하는데… 어릴 땐 그런 쪽 적성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남들 다 대학 가니까 자기도 뭐 해야지 하고, 큰 고민 없이 간호사까지 된 케이스지. 그게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간호사가 아무나 되나? 근데 막상 해보니까 체질이 맞는가보더라. 피도 잘 보고 겁도 없고… 솔직히 나보다 더 담 크다? 농담 좀 보태서 말하자면 우리 집에서 제일 남자 같은 사람은 걔야. 원래 수민이는 귀신 같은 거 절대 안 믿는 애였어. 저승이니 사후세계니 그런 소리 꺼내면, “그런 미신 믿지 마라” 이랬던 애거든. 근데 간호사 일 시작하고 좀 지나니까, 오히려 자기가 더 믿더라고. 알다시피 내가 석사다 뭐다 공부 오래 했잖아. 취직도 늦고… 한창 부모님이랑 사이 안 좋았을 때가 있었어. 하루는 엄마랑 싸우고, 동네 친구랑 소주 한잔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수민이가 퇴근해서 막 들어오는 거야. 평소엔 별 말 안 하던 애가 그날따라 나를 딱 보더니 말하더라. “오빠, 착하게 살아. 자꾸 부모님 속 썩이고 그러면 지옥 가.” 처음엔 장난하나 싶었지.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냐?” 이랬더니… 정색을 하더라. 그리고는 자기가 병원에서 겪은 일들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어. 내가 뭐 귀신을 믿고 안 믿고 떠나서 무서운 이야기 꽤 즐기는 사람이잖아? 근데 그날 수민이가 한 얘긴… 가끔 문득문득 떠오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수민이가 담당하던 병실 중에, 좀 예민한 할머니가 계셨대. A할머니라고 하자. 어느 날 아침, 식사 치워드리러 갔더니 평소보다 유난히 예민하시고 짜증을 내시더래. 왜 그러시냐 물었더니, 옆 침대 할머니가 밤늦게까지 병문안을 받았다는 거야. 말이 안 되지. 병원 내규상 저녁 이후로는 병문안 자체가 안 되거든. 간호사들이 다 보는 시간인데 아무도 못 봤다는 거야. 수민이는 꿈 꾸셨나보다 하고 넘기려고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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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A할머니는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검은 양복 입은 남자들이 몇 명씩 왔다 갔다 했다고, 자기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지목당한 그 침대 할머니는 펄쩍 뛰셨대. “내가 언제 그런 손님을 받았냐고.” 일이 커질까봐 수민이가 겨우 달래고, 그렇게 넘겼다더라. 그런데 다음 근무 때, A할머니가…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대. 너무 조용하게. 예고도 없이. 그게 한두번이 아니래. 수민이 말로는, 그런 비슷한 목격담이 꼭 잊을만 하면 나타난대.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병동의 환자들이, 똑같은 사람을 봤다고 하는 거야. 남들 다 자는 밤에 찾아오는 손님. 검은 양복 입고, 창백한 얼굴로 병실에 슬며시 들어와선, 말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도 종종 본대. 문도 안 열고 통과해서 나가는 사람을 봤다거나, 간병인이 아닌 것 같은 사람을 불러세웠는데 사라졌다고 하거나… 말맞춘 것도 아닌데, 다들 비슷한 인상착의 얘기를 해. 소름 돋지 않냐? 그리고 꼭 그런 목격담이 오가고 나면… 부고가 생겼대. 그래서 다들 언젠가부터 "저승사자 아니냐"고 말하기 시작했데. 수민이도 그러더라고. 그때 A할머니한테 보였던 그 사람들… 사실은 할머니를 찾으러 온 저승사자였던 것 같다고. 할머니가 며칠 전에, 침대 불편하다고 자리를 옮기셨었대. 그래서 할머니 자리인줄 알고 왔다가 못찾고 또 왔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더라. 수민이야 기가 쎄서 그런지 아직 직접 마주친 적은 없다는데, 상상만 해도 무섭다고 하더라. 천하의 박수민이 그런 말 하면 진짜 무섭거든. 나는 뭐…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을 줄 알았지. 그냥 신기한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죽을 때가 되니까 진짜 저승사자가 알아서 찾아오긴 하더라. 내가 술 마시고 누워있는데, 차가 덜컥 밟고지나갈 줄알았겠냐? 그날 따라 술이 참 잘 들어가더라니, 이렇게 되네. 하아... 수민이 말 듣고, 착하게 살걸. 그러니까 너네는 이제라도 착하게 살아라. 정말로… 데리러 오더라. 저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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