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방

할머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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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욱
지난달,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방학을 맞아 이모 댁에서 잠시 머물게 됐다. 서울 외곽,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 그 집엔 2층에 쓰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는데, 이모는 나에게 “그 방엔 절대 들어가지 마.”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엔 그냥 창고 같은 건가보다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밤 2시쯤, 화장실을 다녀오려는데 2층 복도 끝, 그 '닫혀 있어야 할' 방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문틈 사이로, 흰 머리의 노인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이모를 깨웠다. 이모는 당황한 듯 달려와 문을 벌컥 열었고,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모는 침묵 끝에 이렇게 말했다. “그 방은… 네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그대로 놔둔 방이야. …가끔 문이 열릴 때가 있어. 무섭겠지만… 그냥… 꿈이라고 생각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방에서 계속 노인의 발소리가 들렸다. 삐걱… 삐걱… 뚜벅… 그리고 3일 뒤, 이모가 외출한 저녁. 그 방 문 앞에 ‘종이 쪽지’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흰 종이엔 떨리는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얘야, 그 여자… 이모 아냐. 네가 왔을 때부터 계속 다른 얼굴이야. 여기서 나가. 그 애, 사람 아니야. 할머니”


